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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만든 브런너 연재2화무료
Latte Person

아르떼리제의 새

아르떼리제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한 도시의 소음이 물 먹은 솜처럼 흡수되었다. 어제와는 분명 다른 차분함이었다. '하늘빛 카페'의 고요가 숲속의 샘물 같았다면, 이곳 '아르떼리제'는 고전 음악이 흐르는 미술관처럼 정제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높은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운 추상화들, 그리고 큼직한 화분 속 이파리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공간 자체가 거대한 캔버스 같았다.

나는 습관처럼 라떼를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지난번 '하늘빛 카페'에서 다시 꺼내 든 만년필이 셔츠 주머니에서 묵직하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빈 노트에 첫 획을 그으려는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또다시 턱 하고 막히는 것을 느꼈다. 몇 년간 프로젝트 디자이너라는 명패 아래 매몰되어 온 '나'는, 어쩌면 이미 창의력이라는 근육을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닐까. 머릿속은 온통 지난주 마감해야 할 보고서와 다음 달 기획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는 의문이 불안한 물결처럼 밀려왔다.

고개를 들어 무심코 카페 안을 둘러보던 내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창가 테이블에 앉아 손바닥만 한 스케치북에 연신 무언가를 그리는 남자. 짙은 갈색 머리에 시크한 검은색 셔츠를 입은 그는, 주변의 소음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몰입해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옆모습이었다. 얇은 금테 안경을 고쳐 쓰고 자세히 보니, 저건…… 성민?

"야, 준오! 네가 왜 여기 있어?"

정말 성민이었다. 몇 년 만에 만난 대학 동창,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성민은 스케치북을 덮고 벌떡 일어나 내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내 피곤한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그는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도 자기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성민아, 이게 얼마 만이야. 너 여기서 작업해?" "어, 이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 종종 와. 그런데 너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런 데를 다 오냐? 맨날 회사 아니면 집 아니었냐?"

성민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나는 멋쩍게 웃었다. 내 처량한 변명보다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번아웃이 왔어.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아이디어도 고갈되고. 그래서 이렇게 낯선 곳들을 찾아다니며 나를 찾으려고 애쓰는 중이야."

성민은 내 말을 진지하게 듣더니, 이내 씩 웃으며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 안에는 내가 앉아있던 자리에서 본 카페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내가 그저 '고급스럽다'고 느꼈던 공간은, 성민의 손을 거쳐 빛과 그림자, 사람들의 움직임이 어우러진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내 모습도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언가에 갇힌 듯 뻣뻣하게 앉아있는 내 모습은, 실제 나보다 더 나를 정확히 보여주는 듯했다.

성민이 그린 스케치북 속, 갇힌 새처럼 묘사된 준오의 모습.

"봐, 너도 이 안에 있었네." 그가 손가락으로 내 형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너한테서 갇혀 있는 새를 봤어. 창문 밖으로 날아가고 싶은데, 유리창에 자꾸 부딪히는." "갇힌 새라니..." "응. 디자이너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알아? 자기만의 시선을 잃는 거야. 똑같은 것만 보고, 똑같은 생각만 하면, 결국 똑같은 결과물만 나오지."

성민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내 가슴을 꿰뚫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그저 '잘 팔리는 것', '트렌드에 맞는 것'만을 쫓아왔다. 나만의 시선 따위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것은 창의력 이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눈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내 눈을 다시 찾을 수 있는데?"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성민은 피식 웃더니, 스케치북을 덮으며 말했다. "간단해. 네가 본 것을 네 방식대로 다시 그리면 돼. 꼭 그림이 아니어도 좋아. 글이든, 생각이든, 네가 뭘 하든, 그걸 너만의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봐."

그의 말은 단순했지만, 내 마음속 꽉 막혔던 무언가를 뻥 뚫어주는 것 같았다. 라떼는 이미 식어버렸지만, 차가운 컵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쩌면 내가 찾던 것은 거창한 영감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다시 보려는 작은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성민은 겉옷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다음 주말에 친구들 몇 명이랑 루프탑 카페에서 전시회 보러 갈 건데, 너도 올래? 거기 분위기가 예술이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보이거든. 특히 밤에 보면 기가 막히고."

성민의 스케치북 속, 갇힌 새 위에 그려진 작은 비행기와 준오가 덧그린 구름.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프탑 카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어쩌면 그곳에서 나는 '갇힌 새'가 아닌, 날아오를 준비를 하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가슴 한편에 스며들었다. 성민은 씩 웃으며 "그때 보자, 갇힌 새"라는 말을 남기고 카페를 나섰다. 나는 홀로 남아, 성민이 놓고 간 스케치북을 다시 펼쳤다. 내가 앉아있던 그 자리, 갇힌 듯한 내 그림 위로, 성민은 작은 비행기 한 대를 쓱 그려놓았다. 나는 문득, 나의 오래된 만년필을 꺼내 비행기의 꼬리 부분에 작은 구름을 그려 넣었다. 다음 주말, 나는 정말로 날아오를 수 있을까? 다음 주말, 그 루프탑 카페에서 나는 어떤 세상을 마주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