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살이 쏟아졌다. 정확히는, 쏟아지는 햇살 속으로 내가 걸어 들어갔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도시의 소음이 아득한 아래서 웅얼거렸다. '구름 위 캔버스'라는 이름처럼, 하늘과 가장 가까운 루프탑 카페는 온통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는 막힌 숨통을 터뜨리는 듯했다. 지난주 성민이 내 그림 위에 덧그린 구름 꼬리처럼, 내 마음에도 미미한 설렘이 피어났다.
"왔냐? 좀 일찍 오지."
성민은 유리 난간에 팔꿈치를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캔버스 대신 얇은 스케치북과 연필 하나를 들고 있는 그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자유로웠다. 길게 자란 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차 막혔어. 뭐 해?" "보면 몰라? 구름 사냥. 너도 해봐. 저기 보이는 구름마다 이름 붙여주는 거야. 저건 '게으름뱅이의 오후', 저건 '사라진 꿈' 같은 거."
그의 장난기 어린 눈빛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뭉게뭉게 피어난 구름들이 마치 거대한 생물처럼 느리게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내가 늘 보던 구름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르게 느껴졌다.
"나는 그냥 구름인데." "그게 너의 한계야, 준오. 넌 아직 시야가 좁아. 아래만 보지 말고 위를 봐봐. 저 하늘에 수많은 길이 있잖아."
성민의 말에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항상 눈앞의 프로젝트, 발밑의 길만 쫓아왔다. 그래서 길을 잃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구름을 바라봤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도시의 답답함이 이 순간만큼은 저 아래로 멀어져 갔다.
성민은 이내 스케치북을 펼쳐 들고 능숙하게 연필을 움직였다. 그의 손끝에서 거대한 구름이 선 하나로 압축되고, 그 아래로 작게 묘사된 도시 풍경이 펼쳐졌다. 그의 그림은 늘 그랬다. 단순하지만 그 안에 무한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때? 이 자유로운 시선이 느껴져?" 성민이 스케치북을 내밀었다. 나는 그림 속 구름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는 듯한 작은 비행기 한 대를 발견했다. 그건 마치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모습 같았다.
"너도 한번 그려봐. 네가 지금 보고 있는 하늘, 혹은 네가 원하는 자유를." "내가? 난 그림 못 그려." "그림이 아니어도 돼. 낙서라도 괜찮아. 중요한 건, 네 안의 것을 꺼내는 거야. 너 여기 올 때, 그거 들고 왔잖아."
성민의 시선은 내가 무심코 주머니에 넣어둔 만년필로 향했다. 오래된 만년필. 첫 카페에서 우연히 다시 찾은 후, 나는 습관처럼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나는 망설이다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부드러운 필기감이 손끝에 닿았다.
성민은 자기 스케치북의 빈 페이지를 내게 내밀었다. "하늘을 봐. 저기 저 길게 뻗은 구름, 마치 어딘가로 이어진 길 같지 않아?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그려봐, 아니면 써봐. 펜이 가는 대로."
나는 연한 하늘색 선으로 이루어진 구름을 응시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 막막했다. 하지만 성민의 눈빛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나는 천천히 만년필을 종이에 댔다. 주저하는 마음과는 달리, 펜은 부드럽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구불구불한 선 하나였던 것이, 이내 작은 오솔길처럼 이어졌다. 길의 끝에는 작은 점 하나를 찍었다.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 같기도, 혹은 새로운 시작점 같기도 한 불분명한 점.
"이게 뭐야?" 성민이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겠어. 그냥... 길이 보여서. 어딘가로 가는 길인데, 아직 어딘지는 모르겠어." "그래도 괜찮아. 방향을 정했다는 게 중요하지."
그의 말에 가슴속 깊은 곳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완벽한 그림은 아니었지만, 그 한 줄의 선에서 오랜만에 '나'의 흔적을 발견한 것 같았다. 잃어버렸던 창의력이 한 방울씩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루프탑의 바람은 여전히 자유로웠고, 나는 그 바람 속에서 잊고 있던 내 안의 목소리를 들었다.
문득, 저 아래 도시의 빌딩 숲 사이로 작게 보이는 오래된 우체통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페인트가 벗겨진 채 굳건히 서 있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과거의 나를 닮아 보였다. 그 우체통에, 나는 어떤 편지를 보내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그 편지는 누구에게 닿았을까. 혹은, 아직도 발송되지 못한 채 내 안에 머물러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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