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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te Person

도시의 숨결

현우 형의 편지를 읽고 금요일에 만나기로 한 약속은 마른 목에 걸린 가시처럼 따가웠다. '도시의 숨결'이라는 이름 석 자가, 봉인된 과거의 기억처럼 숨통을 조여왔다. 벗어나고 싶어 무작정 걸었다. 낯선 골목 어귀, 오래된 빌라 2층에 자리 잡은 ‘구름다리 커피’ 간판이 눈에 띄었다. 이름이 주는 어딘지 모를 비현실감에 이끌려 문을 열었다.

옅은 커피 향과 함께 마른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여백이 많은 공간은 그 자체로 고요한 질문이었다. 창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마치 구름 위를 지나는 작은 점들처럼 보였다. 이곳이라면 잠시 이 도시의 속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렇듯 따뜻한 카페라떼를 주문했다. 강우가 내려준 라떼는 고소한 우유 거품 아래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 얼어붙었던 심장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잔을 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시의 숨결'은 한때 내 삶의 전부였다. 밤샘 작업도 마다치 않고, 열정 하나로 모든 것을 불태웠던 시간. 나는 그 프로젝트 속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결국 나 자신을 태워버렸다. 빛을 향해 돌진하는 불나방처럼, 타들어가는 줄도 모르고 미련하게 날갯짓했다. 그리고 남은 건 재가 되어버린 공허함, 그리고 도시를 등지고 도망쳐야 했던 좌절뿐이었다.

다시 마주하게 될 현우 형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변함없을까? 아니면 그 역시 나처럼 모든 빛을 잃었을까? 나는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주머니에서 오래된 만년필을 꺼냈다. 뚜껑을 열자 익숙한 잉크 냄새가 퍼졌다. 과거의 나는 이 만년필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망설임 없이 내일을 꿈꿨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용기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문득, 강우가 조용히 다가와 내 앞에 작은 노트 한 권을 놓았다. “복잡한 생각은 때로는 흘려보내는 것이 답일 때도 있죠. 비워내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없으니까요.” 그의 말은 짧았지만, 잉크가 번진 수채화처럼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흘려보낸다. 무엇을? 과거의 나를? 아니면,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노트를 펼쳤다. 첫 페이지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흰색이었다. 비어있는 공간이 나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이 노트에 무엇을 채워 넣어야 할까. '도시의 숨결'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는 또다시 나를 잃어버릴까? 아니면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번졌다. 하늘을 가로지르던 구름은 점차 어둠에 잠식되어갔다. 다음 주 금요일, 현우 형을 만나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잃어버린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그 안에 갇혀버린 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나는 과연 그 그림자를 감당할 용기가 있을까. 아니면, 이대로 도망칠까. 선택은 미뤄진 채, 금요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