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에서 솟아난 거대한 어둠이 온이를 집어삼키는 순간, 수아의 손은 간신히 온이의 옷깃을 움켜쥐고 있었다. 격변하는 음표 세계는 해체되는 악보처럼 갈라지고 뒤틀리며, 찢어진 틈새로 검은 심연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아비규환 속에서, 익숙했던 음표들은 비명처럼 흩어져 사라져 갔다.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는 감각. 수아는 온이를 끌어안은 채 몸을 웅크렸다. 눈을 감아도 어둠 속을 관통하는 맹렬한 바람 소리가 귓가를 때렸고, 세상의 모든 빛이 소멸된 듯한 완전한 암흑이 그녀를 덮쳤다. 온이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둠이 뿜어내는 냉기가 그녀의 체온마저 앗아간 듯했다.
얼마나 추락했을까. 시간의 감각마저 마비된 그 순간, 눈앞에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추락하는 자신들을 중심으로, 암흑이 거대한 수레바퀴처럼 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안에서 아득히 멀리 빛나는 무수한 점들이 보였다. 점들은 빠르게 회전하며 하나의 거대한 문양을 만들더니, 이내 깨진 유리 조각처럼 산산이 부서져 허공으로 흩어졌다.
수아는 온이의 몸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온이의 등에서 돋아난 검은 오선지는 여전히 균열을 품고 있었지만, 더 이상 어둠을 뿜어내지는 않았다. 대신 그 균열 사이에서 미세한 빛의 파동이 일렁였다. 그 빛은 음표 세계가 해체되며 남긴 마지막 잔광처럼 아련했다. “온이야… 온이…” 수아의 목소리는 절박한 속삭임이 되어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온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마치 살아있는 인형처럼 수아의 품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때, 온이의 등 뒤에서 흐릿하게 보이던 빛의 파동이 급격히 커졌다. 그 빛은 검은 오선지의 균열을 따라 순식간에 온이의 몸 전체를 뒤덮었다. 어둠 속에서 오직 온이만이 환한 빛의 심지가 되어 타오르는 듯했다. 빛은 점점 더 강렬해지며 수아의 시야를 압도했고,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귀를 찢는 듯한 고음이 울려 퍼지더니, 모든 감각이 정지하는 듯한 무중력 상태가 찾아왔다.
수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추락하고 있지 않았다. 발밑에는 거대한 거울처럼 매끄러운 흑요석 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은 짙은 안개로 가득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 코끝을 찌르는 쇠 냄새와 축축한 냉기가 이곳이 더 이상 음표 세계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온이의 몸을 끌어안고 있던 수아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멀리 안개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실루엣이었다. 그것은 음표 세계의 어떤 건축물과도 달랐다. 차라리… 거대한 도시의 마천루 같았다. 그러나 기묘하게도 그 건물들은 어딘가 텅 비어 있고, 생명 없는 모습으로 굳어 있었다. 그때, 온이의 몸에서 마지막 빛줄기가 흩어지며 그녀의 눈이 서서히 뜨였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어… 여기는…” 온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낯설었다. 어딘가 차갑고 메마른 음성이었다. 수아는 온이의 얼굴을 확인하려 몸을 돌렸다. 온이의 눈은 수아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수아를 꿰뚫는 듯 허망했다. 그리고 그 순간, 수아는 바닥에 비친 자신들의 그림자를 보았다. 온이의 그림자에는 마치 날개처럼 거대한 검은 오선지가 선명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끝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바닥의 흑요석을 파고들고 있었다. 온이의 힘이 잠식한 것은 비단 지호의 악보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이제 무엇을 잠식하려는 것일까. 그녀의 등 뒤에 펼쳐진 어둠의 오선지는, 음표 세계의 끝 너머에 어떤 새로운 시작을 가져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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