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의 몸은 검은 음표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없이 늘어지는 실타래 같았다. 발밑은커녕 위아래조차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익숙했던 소리들은 날카롭게 찢어지거나 웅웅거리는 낯선 파동으로 변해 온몸을 관통했다. 빛은 제멋대로 휘감겨 색의 폭풍을 일으켰고, 숨 쉬는 것조차 불가능한 듯 폐가 조여드는 고통이 밀려왔다. 멀미와 현기증이 뒤섞인 채 얼마나 떠밀려 다녔을까. 영원할 것 같던 혼란의 파도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툭. 무언가에 닿은 듯한, 그러나 아무런 충격 없는 감각에 온은 겨우 눈을 떴다. 그녀가 서 있는 곳은 바닥이 아니었다. 거대한 오선지가 끝없이 펼쳐진, 투명한 허공 위였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수십 개의 오선이 겹겹이 포개져 아득히 아래로 뻗어 있었고, 그 사이사이를 음표들이 반딧불이처럼 떠다녔다.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고, 낮은음자리표를 닮은 거대한 바위들이 중력을 거스른 채 공중에 떠 있었다. 사방에서 희미한 선율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어느 악보에도 없을 법한 기이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듯했다. “여긴… 어디지?” 온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눈을 감았다 뜨자, 주변의 모든 음표들이 더욱 선명하게, 더욱 입체적으로 그녀의 시야에 박혔다. 어떤 음표는 푸른빛으로 반짝이며 유쾌한 멜로디를 흥얼거렸고, 어떤 음표는 붉은색으로 타오르며 격정적인 화음을 내뿜었다. 그리고 그녀의 발밑, 오선지 사이를 떠다니는 수많은 음표들 사이로, 유독 검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음표 하나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그녀를 블랙홀로 빨아들였던 그 검은 음표와 똑같은 형상이었다. 다른 음표들이 생명력으로 빛나는 것과 달리, 이 검은 음표는 주변의 소리와 빛을 빨아들이는 듯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온은 홀린 듯 그 음표에 다가갔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두려움보다 더 큰 궁금증이 온을 이끌었다. 손을 뻗자, 검은 음표는 미세하게 진동했다.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온이 음표를 잡으려는 순간,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음표가 그녀의 손바닥 안에서, 미묘하게 모양을 바꾸는 듯했다. 불안한 예감에 온은 황급히 손을 거두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음표는 온의 손바닥에 닿자마자 급격히 확장하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켰다. 주변의 오선지가 격렬하게 일렁였고, 떠다니던 음표들이 혼란스럽게 흩어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불길한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온은 발밑의 오선지에서 솟아나는 거대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검은 음표들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형상이었다. 불협화음을 내는 듯 날카로운 금속음이 그림자로부터 울려 퍼졌다. 거대한 몸체는 셀 수 없는 검은 음표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붉은 빛이 섬뜩하게 번뜩였다. 마치 음악이 형상화된 괴물처럼, 그것은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온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온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저 괴물이 이곳의 지배자일까? 아니면 저 거대한 검은 음표가 불러낸 존재일까? 검은 음표 괴물은 맹렬한 기세로 온의 코앞까지 육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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