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NER
AI로 만든 브런너 연재1화무료
음표를 타는 아이

음표를 타는 아이

낡은 피아노 학원 제일 구석, 아무도 찾지 않는 연습실. 창문은 먼지에 가려져 밤하늘의 별조차 가물거렸고, 낡은 피아노 건반 위에는 희미한 달빛만이 겨우 내려앉아 있었다. 열 살 온은 그 빛을 받아 반짝이는 건반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작은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건반 위를 오르내렸다. "흐음..." 낮게 콧소리를 냈다. 쉬운 곡인데도 영 손에 익지 않았다. 멜로디는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연주는 한숨처럼 맥없이 끊어졌다. 온은 손을 멈추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였다. 온의 눈에만 보이는 작은 변화가 시작됐다. 피아노 줄의 진동을 타고 옅은 빛들이 피어났다. 손가락 끝에서 울려 퍼지던 음들이 연한 색깔의 나비처럼, 혹은 반짝이는 별무리처럼 허공으로 흩어졌다. 도는 붉게, 레는 주황빛으로, 미는 노란색으로, 그리고 파는 초록색으로, 솔은 파란색으로, 라는 남색으로, 시는 보라색으로 반짝였다. 투명하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음표들이 온의 주위를 맴돌았다. 온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연주하다 끊겼던 '솔' 음이 푸른 나비가 되어 온의 손가락 끝에 내려앉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저 고요하고 부드러운 감촉. 온이 그 음표를 가만히 어루만지자, 푸른 나비는 파르르 떨며 더욱 선명한 소리를 냈다. 소리는 공간을 채우고, 온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온은 다시 건반에 손을 올렸다. 이번에는 훨씬 섬세하게, 방금 만졌던 음표를 기억하며 건반을 눌렀다. 온의 손가락 끝에서 터져 나온 음표들은 허공에 더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온은 그 음표들을 따라가듯 손을 휘저었다. 손끝에서 맴돌던 음표들이 물결처럼 움직이며 멜로디를 완성해 나갔다. 엉망이었던 연주는 거짓말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선율로 바뀌었다. 건반을 누르지 않은 손은 허공의 음표를 조율하듯 움직였다. 온은 그렇게 음표들을 타고 연주했다. 손가락이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동시에, 온의 시선은 허공에서 춤추는 음표들을 쫓았다. 때로는 옅은 그림자를 드리운 채, 때로는 찬란하게 빛을 내며 온의 음악을 따라 움직이는 음표들. 온은 그 음표들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듯했다. 그러다 문득, 피아노 옆에 쌓여 있던 낡은 악보 더미 사이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흐릿한 달빛조차 뚫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 유독 선명한 빛이었다. 온은 손을 뻗어 낡은 악보를 집어 들었다. 손때 묻은 표지에는 아무런 제목도 없었고, 대신 익숙한 듯 낯선 문양 하나가 희미하게 그려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악보를 펼쳤다. 손으로 직접 그려진 듯한 악보였다. 악보 속 음표들은 온이 이제껏 본 어떤 음표보다 생생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종이를 뚫고 나올 듯한 강렬한 기운. 온은 악보를 조심스럽게 피아노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숨을 들이쉬고 건반을 눌렀다. 첫 음. 쿵, 하고 심장이 울리는 듯한 깊은 소리가 났다. 악보 속 붉은 '도' 음표가 종이 밖으로 뛰쳐나와 온의 눈앞에서 거대한 불꽃처럼 타올랐다. 온은 순간 숨을 멈췄다. 보통 음표와는 다른, 거대하고 맹렬한 기운이었다. 다음 음. '미' 음표가 노란 빛을 뿜으며 허공을 찢고 나왔다. 온의 어깨 위로 솟아오른 '도' 음표와 뒤섞이며 격렬하게 공명했다. 멜로디가 이어질수록 연습실은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심장부처럼 쿵쾅거렸다. 온의 몸은 음표들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놓인 작은 배 같았다. 거대한 음표들이 온의 주위를 휘몰아쳤다. 이전의 나비 같은 음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온은 두려움보다 경이로움에 사로잡혔다. 이 악보는, 이 음악은 대체 뭘까? 점점 더 격렬해지는 소리 속에서 온은 악보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단 하나의 음표.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검은색 음표가 악보의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 온이 그 음표에 손을 대는 순간, 악보 전체에서 폭발적인 빛이 터져 나왔다. 검은 음표는 순식간에 온의 눈앞에 거대한 블랙홀처럼 펼쳐졌다. 온은 홀린 듯 검은 음표 안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무언가가 온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끌었다. 강력한 중력처럼 온의 몸이 악보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앗!" 피아노 건반 위, 온의 손은 허공을 휘저으며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