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대한 음표 괴물의 심장은 끔찍한 음계의 오케스트라였다. 온은 제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눈앞의 악몽을 응시했다. 검은 그림자가 하늘을 가득 메운 오선지 위로 드리워졌다. 괴물이 입을 벌리자 귓청을 찢는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 온은 손으로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두개골을 울리며 온몸을 휘저었다. 거대한 형체는 한 음 한 음,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오선지 위를 쿵, 쿵, 하고 울렸다. 온은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발은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공포는 그녀의 폐를 쥐어짜 숨쉬는 것조차 버겁게 만들었다. "온아! 온아, 너 어디 있어?" 그 순간, 아득한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 온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책상 위에는 온이 항상 만지작거리던 낡은 악보가 펼쳐져 있었다. "민준아, 온이 없어." 수아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민준은 방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온은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함께 숙제를 하기로 한 시간이었다. "어디 갔지? 화장실 갔나?" 민준은 거실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온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수아는 악보에 시선을 고정했다. 온은 며칠 전부터 이 악보에 이상하게 집착했다. "나는 음표들이 움직이는 게 보여!" 온은 신이 나서 소리쳤지만, 민준은 그저 온의 풍부한 상상력이라 생각하고 흘려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온은 사라졌고, 악보는 온이 떠난 자리처럼 덩그러니 펼쳐져 있었다. "온이 어제 그랬어. 이 악보에 있는 거대한 검은 음표가 자꾸 자기를 부른다고…" 수아의 말에 민준은 악보를 내려다봤다. 맨 아래쪽 줄에 자리한, 유독 검고 굵은 음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음표들과 달리 마치 심장처럼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뛰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말도 안 돼. 온이 장난치는 거겠지. 숨바꼭질 같은 거." 민준은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수아는 대답 없이 검은 음표로 손을 뻗었다. 온이 이 음표를 만진 이후로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혹시 이 음표가 온과 관련이 있는 걸까? 손가락 끝이 닿는 순간, 악보에서 차가운 기운이 훅 끼쳐왔다. 동시에 방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펼쳐진 악보 위로 아지랑이처럼 희미한 검은 그림자가 솟아오르는 듯했다. 마치 어둠이 얇은 막처럼 흔들리는 광경에 수아는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거두었다. "수아!" 민준이 황급히 수아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눈동자에 공포가 어렸다. "이거 이상해. 얼른 나가자!" 하지만 수아는 왠지 모르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희미하게 흔들리던 검은 그림자가, 마치 온의 목소리처럼 그녀를 부르는 듯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악보의 음표들이 아주 작게, 어딘가 아련하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 반짝임 속에서 온의 잔상이 어른거렸다. "온이 여기에 있어…." 수아는 홀린 듯 다시 검은 음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음표의 검은 몸체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검은 음표는 수아의 손길에 응답하듯,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블랙홀처럼 빛을 삼키며 일렁였다. 그리고 수아의 몸이 균형을 잃고 악보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아, 안 돼!" 민준의 비명과 함께, 방 안을 가득 채우던 악보의 어둠이 일순간 팽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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