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NER
AI로 만든 브런너 연재5화무료
비가 그친 뒤의 보관소

사라진 존재의 기록

은밀한 서고의 눅진한 공기가 유안의 푸른 기운 도는 흑발을 어지럽게 흩뜨렸다. 흙내음과 습기, 곰팡이가 뒤섞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의 눈동자가 어둠 속을 헤매다, 이내 벽 한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왜소한 형체와 마주쳤다. 낡은 주황색 오버사이즈 작업복에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쓴 오지나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등에는 늘 그렇듯 커다란 공구 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왔네? 이 구석까지 어떻게 찾아왔어?" 오지나는 얼굴의 반을 가린 모자 아래에서 살짝 드러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목소리에는 명랑함이 배어 있었지만, 이곳의 음습한 분위기와는 어딘가 어긋나는 기묘한 유쾌함이었다.

"이곳이…… 사라진 존재에 대한 기록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했죠." 유안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턱선이 그의 긴장감을 드러냈다. 그는 품속에서 낡은 학생증을 꺼내 들었다. 이름이 번져 지워졌지만 '지워줘'라는 글귀는 선명한, 그를 이곳으로 이끈 윤서의 학생증이었다. "이 학생증의 주인이…… 사라진 존재입니까?"

오지나는 유안의 손에 들린 학생증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은 잠시 공허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사라진 하루는 그저 시간이 지워진 거야. 하지만 사라진 존재는…… 말 그대로 사라진 거지.” 오지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낡은 작업화로 바닥의 흙먼지를 살짝 밀었다. “세상 모든 기록에서 지워져. 가족들의 기억에서도, 친구들의 추억에서도, 심지어 태어났다는 사실조차도 사라지는 거야.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유안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가 상상했던 '기록 변경'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그의 눈빛에 혼란과 함께 깊은 회의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윤서는…… 정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 되는 건가요? 제가 이 기록을 찾으면, 윤서라는 사람이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되는 겁니까?”

오지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없어지는 게 아니야. 사라지는 거지. 없어지는 건 공백을 남기지만, 사라지는 건 그 공백조차 남기지 않아.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흔적도 없이.” 그녀는 마치 폐역의 오래된 벽처럼 굳게 닫힌 서고의 안쪽을 가리켰다. “여기에 있는 기록들은, 그런 식으로 사라진 자들의 잔해 같은 거야. 다른 곳에선 찾을 수 없는, 이 폐역만이 간직한 마지막 조각들.”

유안은 오지나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희미한 램프 불빛 아래, 빽빽하게 꽂힌 서류철들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가 보관함 속에서 발견한 낡은 학생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윤서의 '사라진 하루'가 어쩌면 '사라진 존재'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는 끔찍한 가설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그는 과거의 쓰라린 후회로 인해 타인의 기록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원칙을 지켜왔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원칙이 맹목적인 회피처럼 느껴졌다.

“이 기록을 찾으면…… 그 사람을 되살릴 수 있나요?” 유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오지나는 답 대신, 벙거지 모자 아래에서 유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평소의 명랑함을 지운 채, 깊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건…… 이 폐역이 왜 이런 곳에 지어졌는지부터 알아야 할 거야. 네가 찾으려는 진실이, 사실은 또 다른 거대한 거짓 위에 세워져 있을 수도 있거든.”

그녀는 공구 가방에서 묵직한 쇠망치를 꺼내 들더니, 벽 한쪽에 녹슬어 붙은 철제 명패를 툭툭 건드렸다. 낡은 명패에는 흐릿하게 ‘존재의 연금술사’라는 알 수 없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어쩌면, 넌 이미 사라진 존재를 찾고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을 찾으려 하는 걸지도 모르지.”

오지나의 마지막 말은 유안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윤서의 '사라진 하루'와 자신의 과거, 그리고 이곳 '사라진 존재'의 기록들이 복잡하게 얽히는 실타래처럼 느껴졌다. 그의 손에 들린 학생증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만약 윤서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그는 무엇을 찾아왔고, 무엇을 지우려 했던 것일까? 그리고 이 폐역은 어떤 진실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유안은 명패에 새겨진 기이한 글귀와,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오지나의 눈빛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가 발을 디딘 곳은 진실의 입구인가, 아니면 더 깊은 미궁의 시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