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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친 뒤의 보관소

1화 17번 보관함

**비가 그친 뒤의 보관소**

**1화: 빗물에 젖은 시간의 조각**

기록 보관소의 낡은 철문은 폭우가 휩쓸고 간 흔적을 빗물 자국으로 선명히 새기고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공기 속에서 녹슨 쇠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폐역 특유의 몽환적인 향을 풍겼다.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드리우는 달빛은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며, 보관소 안을 더욱 깊은 그림자로 잠식시켰다.

하유안은 늘 그렇듯 색 바랜 남색 작업복을 단정히 입고, 손목의 낡은 회중시계를 습관처럼 만지작거렸다. 그의 푸른 기운이 도는 흑발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윤슬을 그렸고, 늘 사색에 잠긴 듯한 눈빛은 방대한 기록들 사이를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 비록 폐역 기록사는 그의 전부였지만, 이곳의 고요함은 때때로 그의 심장을 더욱 고독하게 짓눌렀다.

깊은 밤, 보관소 내부를 점검하던 그의 발걸음이 낡은 철제 캐비닛 앞 17번 보관함에서 멈춰 섰다. 십수 년간 굳게 닫혀 있던 다른 보관함들과 달리, 17번은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다. 그 틈새로 언뜻 비치는 무언가가 유안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 회중시계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었다. 폐역의 철칙은 '기록 불변'이자 '임의 개방 금지'였다. 그러나 그의 직감은 이 밤, 이 순간 17번 보관함이 자신을 부르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보관함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은 먼지와 습기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빛바랜 비닐 봉투 하나가 유안의 눈에 들어왔다. 봉투 안에는 물기에 번져 희미해진 종이 조각이 담겨 있었다. 봉투를 꺼내 조심스럽게 열자, 낡은 학생증 하나가 손안에 놓였다. 사진 속 어린아이의 얼굴은 흐릿했고, 이름은 빗물에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새벽여고'라는 교명과 함께 희미하게 박힌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2008년 11월 12일.

유안은 학생증을 든 채 멍하니 날짜를 바라봤다. 그날은, 그에게도 사라지지 않고 선명히 남아있는 과거의 어떤 하루와 묘하게 겹쳐지는 날이었다. 폐역 보관소에서 17번 보관함이 스스로 문을 열었고, 그 안에 담긴 것은 이름조차 지워진 학생증이었다. 이 기록은 과연 누구의 것이며, 왜 이토록 오랜 시간 잊혀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걸까.

그 순간, 유안은 학생증 뒷면에 쓰인 희미한 문구를 발견했다. 잉크가 거의 다 번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특정 단어 하나만은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지워줘.”

학생증 속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이가 자신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유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폐역의 기록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믿어왔던 그의 원칙이, 이 이름 없는 기록 앞에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이 작은 종이 조각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학생증은 그저 낡은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스스로 존재를 증명하려는 듯, 숨겨진 또 다른 문을 가리키고 있었다.